2014.10.27 06:48
다시한번 드림씨어터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Dream Theater Tour Korea!
감동스!!

추억을 더듬을수 있던 공연...
1,2집 빼고는 대충 다한듯....

페트루시는 연주 중간중간에 팬들 응원을 독려하고 ... 멍때리고 있으면 광분하게 만들어주는.. 여유까지.. 그런 연주하면서 .. ㄷ ㄷ ㄷ

가끔윙크도 ㅋㅋㅋ

조던 루데스는 마법사 모자쓰고.. 정신없는 연주에... 기타같이 생긴 키보드 메고 무대를 누비고 다니고...

존명 .. 역시 묵묵 자기연주에만 충실
ㅋㅋㅋ 친구없을거 같은데 밴드하고있는거보면 신기하다는...

마이크의 전광석화 같은 드럼!!
정확하게 잘들리기도 하지만 기계적인 리듬도
나름 매력이....^^;;

제임스 라브리에... 흰머리가 ㄷ ㄷ ㄷ
멤버중 최연장자다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몸이 예전 같지않아 1시간 정도만 노래하고 중간 중간에 연주곡 넣으면 어떨지 생각해봤네요 ㅎㅎㅎ 드림씨어터는 곡들이 전부 길어서...
애매하긴합니다^^

여튼 이날 떼창이 너무 과해서 연주를 듣기가 힘들었다는... 끝까지 떼창 ㅋ...다들 광팬인가?
음...











Posted by Shred sh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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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2 03:23


SRV 악보집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Baughan)
-The Sky is crying
Posted by Shred sh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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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6 11:38


번역 bonjo)

그들이 프로의 꿈을 다지고 있을 무렵, 락 음악계, 정확히 말해서 락 기타계의 토양은 역사 유래 없을 정도로 비옥했다. 3대 기타리스트를 비롯, 지미 헨드릭스, 리치 블랙모어, 락은 아니었지만, 알 디 메올라, 영웅 반 헤일런...
그 토양위에서 싹을 틔운 기타리스트들 중, 가장 먼저 열매를 보여준 인물은 다름아닌 잉위 맘스틴. 그 이후 나온 사람들은 억울하게도 그의 모방이라는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인물들 중, 스스로 모방이 아니었음을, 그 생명력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두 사람. Paul Gilbert와 Chris Impellitteri가 만났다. 화려한 데뷔와 고집스런 음악, 임펠리테리...화려하지 못했지만 주목받은 데뷔, 그리고 그 음악적 유연함. 폴 길버트...
두 사람에게 지나온 음악세계는 어떤 모습이고, 또 그들 앞에 남겨진 길은 어떤 모습일까...들어보자.
개인적으로는 사진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임펠리테리라 성격이 좀 이상한건 아닌가 했는데, 이 인터뷰를 번역하면서 그의 유머감각에 놀랬다.
by bonjo

- 한계에 가까운 연주...
영기타(이하YG) : 에, 2000년 1월달에 발매되는 거니까 신년 인사부터...
크리스 임펠리테리(이하 CI) : 하이! 에이스 프렐리입니다.(KISS의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이하 PG) : 그리고 나는 천둥의 신, 진 시몬즈다...라고? 진지하게 하자구요.(웃음) 우선, Y2K문제를 넘느라 힘이 들겠지만 모두들 살아남아있기를 바래요. 그건 축하할 일이니까요.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만, 컴퓨터의 천 단위가 2라는 숫자로 바뀌는게 솔직히 저는 기뻐요. 그리고...락 음악이 생긴지 얼마나 되었지? 일랙 기타가 개발된지 한 50년 되었네요. 그 사이에 락 음악은 여러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생각해보면 앞으로 50년간 어디로 갈지 무척 궁금하네요.
CI : 나는...어쨌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살아남았군요! 우리들은 2000년에 도착한거예요!!!(웃음) 내 마음도 폴과 똑같아요. 이제부터 음악적으로 재미있는 시대가 되어가리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이런 저런 배워야만 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제부터 그와 마찬가지로 더욱 더 음악의 진화가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일랙 기타가 나온지 벌써 50년이예요? 생각해보면, 그동안은 베이스와 리듬의 강조를 축으로 하면서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이 등장해왔지요. 이후에도 비슷한 면으로의 발전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요? 솔로연주에 관해 이야기하자면..."과거"를 발전시킨 익사이팅한 것들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빌 게이츠가 아니라 우리들 기타리스트들이 세계를 지배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YG : 그런데, 오늘의 테마는 [20세기에 이름을 남긴 기타리스트]입니다만...먼저 최초로 꼽아야만 하는 사람은 지미 헨드릭스겠지요? 폴은 5살 때 그의 음반을 처음 구입했지만, 너무 어릴 때라 좋은 것을 몰랐었다라고...
PG : 그렇죠. 5살 때, 나는 부모님의 레코드들을 듣고 있었지요. 부모님들은 많은 비틀즈, 롤링 스톤즈의 레코드, 엄청난 양의 블루스, 클래식 레코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하나 하나의 악기를 따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지 못했어요. 기타, 베이스, 드럼 소리가 따로따로 인식되는게 아니라 몽땅 한 덩어리로 들렸어요. 그래서 였는지, 지미의 음악은 좋기는 했지만 그게 최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일 좋았던 것은 비틀즈처럼 울리는 보컬이었지요. 아직 악기 연주에 관심이 없던 때였거든요. 레코드를 들으면 먼저 보컬이 들렸어요. 레드 제플린이나, 에어로스미스 등으로 기타소리를 알아듣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예요.
YG : 헨드릭스의 위대함을 알게 된 것은...?
PG : 그 순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의 라이브 레코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 "Rock Me Baby"가 들어있지요. 12살 정도의 어느 날, 어머니가 [Jimi Hendrix Movie]라는 심야영화를 데리고 갔는데, 그 영화에 Rock Me Baby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왔다는 것이죠.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알았어요. 그때까지 소리로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비쥬얼적인 면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충격이었지요. 어째서 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째서 그가 그토록 근사하다는 것인지, 한 순간에 이해가 되었어요. 나에게 있어서는 역명적인 일이었어요. "알았다! 바로 이거야! 최고야!"라고 말이죠. 스테이지 위를 누비고 다니는 그는, 정말 멋있었어요.
YG : 크리스는? 어렸을 때부터 들었나요?
CI : 아뇨, 제가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마호가니러쉬의 프랭크 마리노가 연주하는 [Purple Haze]였어요.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처음이었어요. 프랭크의 커버가 헨드릭스의 음악과의 첫 대면인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을 듣고 "음...멋있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서 지미 본인의 연주를 듣기 시작했지만, 그는 60년대의 그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고 있었다는 느낌이었지요. 그 점에 있어서는 대담히 경의를 표하지만, 웬지 나 자신은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받은 일 이 없어요. 그건 내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저항의식이 많기 때문일런지도 모르죠. (웃음)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모두다 날보고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헨드릭스의 곡은 연주할 가치가 있어. 철 좀 들어라" 라고 자주 잔소리를 들었어요. 그래도 난 절대로 싫었어요. 지미의 음악도, 연주도 훌륭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되는 것이 싫었던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영향받은 일은 없네요.
YG : 폴의 경우처럼, 처음에는 잘 몰랐었지만, 기타 연주를 이해하면 할수록 우수함을 느낀다...,헨드릭스에 관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PG : 나는 종종, 기타리스트뿐 아니라 뮤지션 전반을 두 개의 커다란 카테고리로 분류하지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우선 첫째는 테크닉과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통제력을 갖춘 플레이어로서 완벽한 인간, 둘째는 한계에 가까운 연주를 하는 인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후자의 경우는 연주하는 음이 틀리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연주를 들려주는 타이프라는 것인데, 지미는 틀림없이 그 부류의 인간이었어요. 듣고 있으면, 실수도 있고, 튜닝이 맞지 않은 음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그 엄청난 연주는, 그런 한계에 가까운 연주를 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느낌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확성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초보 시절에는 그 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딴 이야기지만, 잉위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근사한거죠. 확실하게 그의 연주는 테크니컬하면서도 통제되고 있지요? 그렇지만 동시에 한계에 가까운 연주를 하는 스릴도 있지요. 그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존재라고 생각해요.
CI : 동감이예요. 지미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은 연주를 하는 인물이예요. 기술적인 면을 이야기하면, 그보다 나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스타일은 완전한 신 경지였지요. 그리고, 그 스타일 때문에 그 엄청난 연주가 가능했던 것이구요. 그 아슬아슬한 느낌은 묘한 매력이 있지요. 어지간히도 한계의 레벨에서 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곡에 따라서는 "어떻게 연주하면 저런 소리가 나지?"라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는 거죠. 그 이후를 이야기하자면, 에디(Eddie Van Halen)이 그런 스타일이죠. 그도 막 나왔을 때에는 신경지로 세상을 뽕~가게 만들었잖아요? 지미의 플레이에는 그와 상통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것이 저의 헨드릭스에 대한 느낌이예요.

Paul Gilbert & Chris Impellitteri / 2. 3대 기타리스트에 관하여
- 한계에 가까운 연주를 추구하던 그들에게
3대 기타리스트는 어떤 존재였는가
YG :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헨드릭스와는 반대로 당시의 정확한 연주의 대표격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지요. 그의 스타일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존재이지요?
PG : 그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반 헤일런의 데뷔앨범이 나왔을 때(1978년), 그의 팬이 되었지요. 그래서 그에 관해 잘 알고 싶어서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에릭 클랩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라고 대답했더라구요. "에? 농담이겠지?"라는 느낌이었어요. 에디의 음악이란 게 어디 에릭 클랩튼과 닮은 구석이 있어야지요! (웃음) 지미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인터뷰에서 "영향받은 연주자는 밥 딜런입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도 놀랬지요.(웃음)
YG : "나는 비틀즈에게 영향받았다"라고 폴이 이야기해서 팬들이 놀라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요?
PG : 다들 "무슨 소리야?"라고 반응할거예요.(웃음) 그렇지만 그건 이런 이야기예요. 어떤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자기 자신도 그 음악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단지..., 클랩튼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독자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봐요. 크림(Cream) 시대의 그 퍼즈의 음이란게..., 라이브를 들어보면 굉장해요. 그리고 "정확한 연주"에 관련된 이야기이지만, 프레이즈가 계속해서 리듬을 타는 것도 놀라워요. 나 자신도 속주를 하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으면 리듬 쪽을 잊고 말지요. 그런데 클렙튼의 연주는, 예를 들어 백으로 흐르고 있는 드럼과 베이스를 빼 버려도 솔로연주로부터 리듬이 확실하게 들릴거예요. 지금까지도 그 부분은 일관되고 있지요.
CI : 우리들은 그와 동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옳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곡에 맞는 음을 연주하지요, 그는. "정확한 타이밍에 곡에 맞는 음을 연주하면 프레이즈의 흐름이 나와서, 이야기를 걸 수 있게 된다"라는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클랩튼의 연주가 딱 그것이예요. 나 자신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웃음) 지극히 프레이즈가 정확하면서도 동시에 목소리같은 인간미도 갖추고 있지요. 마치,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요. 무척이나 맛이 있는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곡능력도 놀랍지요. 예를 들어 [Layla]같은 곡, 지극히 감성적인 구성이잖아요? 나에게 있어서는 그의 악곡도 매력적이예요.
YG :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지미 페이지(Jimmy Page)에 관해서는 "엄청난 기타리스트이다"라고 평가하는 사람과, "아니야, 그는 결국 편곡자, 프로듀서일 뿐이야"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은 어떨게 생각해요?
PG : 작곡/편곡도 훌륭하지만, 기타 연주도 무척 좋아해요. 어렸을 때,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음반에 맞추어 거울 앞에서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곤 했거든요. 싸구려 레코드 플레이어에 음악을 틀고, 장난감 기타를 들고 띠융 띠융~(웃음)
그것은 어린 시절의 판타지였어요. 지미 페이지같은 멋진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요. 그렇기 떄문에 그의 연주에 대해 객관적이 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네요.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에요. 어떤 연주가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연주를 카피할 때, 지미가 실수한 부분을 실수한 그대로 따라 연주했지요. 그런데 들어보면 그가 실수한 부분이 실제로는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웃음)
CI : 완벽한 팬이네요!
PG : 지미가 그것을 완벽하게 연주했을 것을 예측한다고 해야하나..., 나에게는 그 감각이 전해져 왔어요. 실수인지 뭔지, 적어도 나에게는 표현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전해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CI : 확실히 그는 [표현자]이지요. 처음으로 [Whole Lotta Love]의 솔로를 들었을 당시, 이게 뭐지? 라고 생각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나에게 있어서도 지미 페이지라는 존재는 그 시대의 정상을 달리는 인물이었지요. 아직 초등학교 4년생 정도의 어린애였지만...(웃음) 그런 어린 아이에게도 멋있었다구요. 그리고 그는 틀림없이 리프의 거장이기도 해요. [Whole Lotta Love]는 영원히라도 듣고 있을 수 있어요.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곡 중에 그 곡을 모방했는지! 어떤 연주자라도 어떤 부분에서라도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건 레드 제플린의 곡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YG : 레드 제플린의 리프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지미 페이지가 모든 곡의 발상을 했다고들 하지만, 요 전에 존 폴 존스(b)가 일본에 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많은 경우, 단음 리프는 존 폴 존스가 만들었다는데요. 표기가 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PG : 단음...? 예를 들면, [Heartbreaker]같은 거요?
YG : 그 곡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Black dog]는 존이 썼다고...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코드 위주의 리프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PG : 자..그러면 존 폴 존스도 위대한 인물이네요.(웃음)
YG : 그는 레드 제플린에 가입하기 전부터 안정된 수입이 있는 프로였지요. 세션에, 편곡, 프로듀스등을 해서, 그 경험을 레드 제플린에서 살렸던 것이기 때문에, 지미 페이지와는 또 달라요. 베일에 싸인 프로듀서같은 느낌이랄까...
PG : 확실히, 그 멤버에게는 엄청난 실험정신이 있었지요. 요즘의 미국 젊은이들은 그들의 곡을 라디오를 통해서 체험하고 있어요. 즉, 그들의 곡 중에서도 짧은 팝송만을 듣고 있어요. 그렇지만 옛날은 달랐잖아요? 앨범으로 들었다는 거죠. 즉, 듣기 편한 팝적인 구성을 갖고 있지 못한 곡들에서도 좋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그런 곡들에는, 밴드의 즉흥연주가 상당히 훌륭하게 이루어져 있지요. 그 멤버들이었기 떄문에 그것으로 좋은 곡들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6학년때라고 기억하는데, 친구들에게 잼이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어요. "말로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가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는 것이 좋아" 라고 말이죠.(웃음)
YG : 그런데, 그 당시 제프 백(Jeff Beck)은, 에릭 클렙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불리웠는데, 폴이나 크리스의 인터뷰에서는 그의 이름이 별로 언급되지 않는군요.
PG : [Blow by Blow]나 [Wired]...,제프 백의 명반이라고 하는 곡들에 대해서도 입을 열 수가 없어요. 잘 들어본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퓨젼 음악을 잘 듣지 않아요. 퓨젼 쪽의 음악이란게, 많은 경우 키보드가 들어가 있잖아요? 마치 오리가 꽥꽥거리는 것 같아요.(웃음) 음악의 내용은 훌륭할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사운드에 사로잡혀본 적이 없어요. 제프 백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의 트리뷰트 음반에서 2곡을 연주했는데, 그 때 연주했던 야드 버즈(Yardbirds)의 [Heart full of soul]의 60년대적인 비브라토가 흥미 있었어요. 나는 에디 반 헤일런이나 잉위를 들으며 비브라토를 익혔기 때문에 폭넓고, 느리고, 절제된 흔들림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당시의 제프는 침착하지 못하다고 말해도 될 만큼 엄청나게 빠른 비브라토였어요.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연주를 연습하다보니 "이건 또 이대로 멋이 있네"라고 생각했지요. 그 곡을 연주하면서 60년대의 퍼지음의 기타를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그 후 그는 훨씬 폭넓은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인데, 그 변화 자체도 흥미가 있었어요. 한가지 사운드에서 다른 사운드로 진화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대담하게 그걸 해내고 있잖아요? 연주자로서 성장해 가는 정도가 느껴지는 기타리스트라는 인상이예요.
CI : 제프 백에 관해서는 나도 같아요. 한 곡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없어요.(웃음)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얀 헤머(Jan Hammer)와 함께 했던 레코드예요. 옛날에 내가 레코드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가게에 곧잘 걸려있곤 했어요.
YG : 그렇지만 [모든 것에 반항하는 타입의 인간]이었기 떄문에 듣지 않았다?!?!
CI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그렇지만 하모닉 톤은 흥미 있었어요. 그리고 서정적인 면. 그는 적은 음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톤을 가지고 있어요. 톤이란게 무척 중요하잖아요? 기타리스트가 독자성을 확보하는데는, 자신만의 톤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막 배우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완성해놓았지요. 소리를 들으면 "그다!"하고 금방 알 수 있어요. 그의 곡을 몰라도 그의 소리는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남을 연주자라고 생각해요.



- 한계에 가까운 연주를 추구하던 그들에게
3대 기타리스트는 어떤 존재였는가
YG :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헨드릭스와는 반대로 당시의 정확한 연주의 대표격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지요. 그의 스타일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존재이지요?
PG : 그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반 헤일런의 데뷔앨범이 나왔을 때(1978년), 그의 팬이 되었지요. 그래서 그에 관해 잘 알고 싶어서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에릭 클랩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라고 대답했더라구요. "에? 농담이겠지?"라는 느낌이었어요. 에디의 음악이란 게 어디 에릭 클랩튼과 닮은 구석이 있어야지요! (웃음) 지미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인터뷰에서 "영향받은 연주자는 밥 딜런입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도 놀랬지요.(웃음)
YG : "나는 비틀즈에게 영향받았다"라고 폴이 이야기해서 팬들이 놀라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요?
PG : 다들 "무슨 소리야?"라고 반응할거예요.(웃음) 그렇지만 그건 이런 이야기예요. 어떤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자기 자신도 그 음악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단지..., 클랩튼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독자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봐요. 크림(Cream) 시대의 그 퍼즈의 음이란게..., 라이브를 들어보면 굉장해요. 그리고 "정확한 연주"에 관련된 이야기이지만, 프레이즈가 계속해서 리듬을 타는 것도 놀라워요. 나 자신도 속주를 하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으면 리듬 쪽을 잊고 말지요. 그런데 클렙튼의 연주는, 예를 들어 백으로 흐르고 있는 드럼과 베이스를 빼 버려도 솔로연주로부터 리듬이 확실하게 들릴거예요. 지금까지도 그 부분은 일관되고 있지요.
CI : 우리들은 그와 동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옳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곡에 맞는 음을 연주하지요, 그는. "정확한 타이밍에 곡에 맞는 음을 연주하면 프레이즈의 흐름이 나와서, 이야기를 걸 수 있게 된다"라는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클랩튼의 연주가 딱 그것이예요. 나 자신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웃음) 지극히 프레이즈가 정확하면서도 동시에 목소리같은 인간미도 갖추고 있지요. 마치,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요. 무척이나 맛이 있는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곡능력도 놀랍지요. 예를 들어 [Layla]같은 곡, 지극히 감성적인 구성이잖아요? 나에게 있어서는 그의 악곡도 매력적이예요.
YG :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지미 페이지(Jimmy Page)에 관해서는 "엄청난 기타리스트이다"라고 평가하는 사람과, "아니야, 그는 결국 편곡자, 프로듀서일 뿐이야"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은 어떨게 생각해요?
PG : 작곡/편곡도 훌륭하지만, 기타 연주도 무척 좋아해요. 어렸을 때,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음반에 맞추어 거울 앞에서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곤 했거든요. 싸구려 레코드 플레이어에 음악을 틀고, 장난감 기타를 들고 띠융 띠융~(웃음)
그것은 어린 시절의 판타지였어요. 지미 페이지같은 멋진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요. 그렇기 떄문에 그의 연주에 대해 객관적이 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네요.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에요. 어떤 연주가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연주를 카피할 때, 지미가 실수한 부분을 실수한 그대로 따라 연주했지요. 그런데 들어보면 그가 실수한 부분이 실제로는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요.(웃음)
CI : 완벽한 팬이네요!
PG : 지미가 그것을 완벽하게 연주했을 것을 예측한다고 해야하나..., 나에게는 그 감각이 전해져 왔어요. 실수인지 뭔지, 적어도 나에게는 표현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전해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CI : 확실히 그는 [표현자]이지요. 처음으로 [Whole Lotta Love]의 솔로를 들었을 당시, 이게 뭐지? 라고 생각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나에게 있어서도 지미 페이지라는 존재는 그 시대의 정상을 달리는 인물이었지요. 아직 초등학교 4년생 정도의 어린애였지만...(웃음) 그런 어린 아이에게도 멋있었다구요. 그리고 그는 틀림없이 리프의 거장이기도 해요. [Whole Lotta Love]는 영원히라도 듣고 있을 수 있어요.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곡 중에 그 곡을 모방했는지! 어떤 연주자라도 어떤 부분에서라도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건 레드 제플린의 곡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YG : 레드 제플린의 리프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지미 페이지가 모든 곡의 발상을 했다고들 하지만, 요 전에 존 폴 존스(b)가 일본에 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많은 경우, 단음 리프는 존 폴 존스가 만들었다는데요. 표기가 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PG : 단음...? 예를 들면, [Heartbreaker]같은 거요?
YG : 그 곡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Black dog]는 존이 썼다고...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코드 위주의 리프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PG : 자..그러면 존 폴 존스도 위대한 인물이네요.(웃음)
YG : 그는 레드 제플린에 가입하기 전부터 안정된 수입이 있는 프로였지요. 세션에, 편곡, 프로듀스등을 해서, 그 경험을 레드 제플린에서 살렸던 것이기 때문에, 지미 페이지와는 또 달라요. 베일에 싸인 프로듀서같은 느낌이랄까...
PG : 확실히, 그 멤버에게는 엄청난 실험정신이 있었지요. 요즘의 미국 젊은이들은 그들의 곡을 라디오를 통해서 체험하고 있어요. 즉, 그들의 곡 중에서도 짧은 팝송만을 듣고 있어요. 그렇지만 옛날은 달랐잖아요? 앨범으로 들었다는 거죠. 즉, 듣기 편한 팝적인 구성을 갖고 있지 못한 곡들에서도 좋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그런 곡들에는, 밴드의 즉흥연주가 상당히 훌륭하게 이루어져 있지요. 그 멤버들이었기 떄문에 그것으로 좋은 곡들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6학년때라고 기억하는데, 친구들에게 잼이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어요. "말로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가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는 것이 좋아" 라고 말이죠.(웃음)
YG : 그런데, 그 당시 제프 백(Jeff Beck)은, 에릭 클렙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불리웠는데, 폴이나 크리스의 인터뷰에서는 그의 이름이 별로 언급되지 않는군요.
PG : [Blow by Blow]나 [Wired]...,제프 백의 명반이라고 하는 곡들에 대해서도 입을 열 수가 없어요. 잘 들어본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퓨젼 음악을 잘 듣지 않아요. 퓨젼 쪽의 음악이란게, 많은 경우 키보드가 들어가 있잖아요? 마치 오리가 꽥꽥거리는 것 같아요.(웃음) 음악의 내용은 훌륭할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사운드에 사로잡혀본 적이 없어요. 제프 백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의 트리뷰트 음반에서 2곡을 연주했는데, 그 때 연주했던 야드 버즈(Yardbirds)의 [Heart full of soul]의 60년대적인 비브라토가 흥미 있었어요. 나는 에디 반 헤일런이나 잉위를 들으며 비브라토를 익혔기 때문에 폭넓고, 느리고, 절제된 흔들림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당시의 제프는 침착하지 못하다고 말해도 될 만큼 엄청나게 빠른 비브라토였어요.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연주를 연습하다보니 "이건 또 이대로 멋이 있네"라고 생각했지요. 그 곡을 연주하면서 60년대의 퍼지음의 기타를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그 후 그는 훨씬 폭넓은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인데, 그 변화 자체도 흥미가 있었어요. 한가지 사운드에서 다른 사운드로 진화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대담하게 그걸 해내고 있잖아요? 연주자로서 성장해 가는 정도가 느껴지는 기타리스트라는 인상이예요.
CI : 제프 백에 관해서는 나도 같아요. 한 곡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없어요.(웃음)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얀 헤머(Jan Hammer)와 함께 했던 레코드예요. 옛날에 내가 레코드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가게에 곧잘 걸려있곤 했어요.
YG : 그렇지만 [모든 것에 반항하는 타입의 인간]이었기 떄문에 듣지 않았다?!?!
CI : 그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그렇지만 하모닉 톤은 흥미 있었어요. 그리고 서정적인 면. 그는 적은 음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톤을 가지고 있어요. 톤이란게 무척 중요하잖아요? 기타리스트가 독자성을 확보하는데는, 자신만의 톤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막 배우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완성해놓았지요. 소리를 들으면 "그다!"하고 금방 알 수 있어요. 그의 곡을 몰라도 그의 소리는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남을 연주자라고 생각해요.

- "실제로 해낸 사람이 있으니, 나도 하면 된다"
YG : 3대 기타리스트들과는 연대적으로 거리가 있지만, 리치 블랙모어라면, 리얼타임이지요?
CI : 그도 한참 전세대 사람이예요.(웃음)
PG : 리치라면, [Machine Head]를 벼룩시장에서 산 것이 최초예요. 50센트 주고 말이죠.(웃음) 집에 돌아와서 옆면에 붙어있는 먼지를 닦아내야만 했을 정도로 낡은 물건이었지요.(웃음) 그렇지만 별로...[Highway Star]에는 멋진 솔로가 들어 있기는 했지만, 실은 별 감동은 없었어요.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No No No]를 비디오로 본 이후일 꺼예요. 리치의 즉흥연주와 그 톤이 무척 멋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딥 퍼플의 곡을 실제로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그 탁월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죠. 그들의 작품을 잘 들어보면 프로듀스나 믹싱은 별 것 없어요. 스트레이트하지요. 리버브도 많이 걸려있지 않고, 디스토션을 많이 걸어놓지도 않았지요. 리치의 사운드는 상당히 깨끗하지요? 그렇지만 록을 하고 있다구요. [Maybe I'm A Leo],[Pictures of Home]을 밴드로 연습하다가 놀래 버렸어요. 아무리 싸구려 기타와 앰프라도 록을 할 수 있다구요.(웃음) 왜냐하면, 어떤 기타 사운드가 되었건, 그의 리프 자체가 헤비하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는 그렇게 들린다는 것이죠. 그런 건, 다른 밴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예요.
CI : 내가 제일 처음으로 외운 곡이 [Smoke on the Water]였지만, 딥 퍼플에게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레인보우 시대에 영향을 받았어요. [Kill the King]같은 곡은 정말 멋져요! 수명이 긴 록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듣는 그 순간부터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특별히 리치의 깨끗한 톤은 무척 독특한 것이죠. 폴이 이야기했듯이 리치와 관련된 작품들의 대부분은 네츄럴한 사운드로 되어있지요.
PG : 그래요. 그가 연주한 소리 그대로지요.
CI : 마치 [마이크 세웠어요, 녹음합시다]식의 느낌.(웃음) 실제로 그런 분위기였을거예요. 그렇기 떄문에 깨끗한 톤으로 녹음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리치는 그 시대의 기술부족의 희생자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의 연주는 멋진 것이었지요.
YG : 두사람의 연주에서 클래시컬한 바이브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그 근원은 리치라는 것이 되나요?
PG : 직접적으로는 아니예요. 부모님이 클래식을 곧잘 듣고 계셨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그 영향이 시작점이었지요. 거기에 가장 구체적으로 충격을 준 것은 잉위였지요. 록 음악 중에서 하모닉 마이너라든가 디미니쉬를 연주하는 그의 연주에는 엄청 흥분했어요. 완전히 다른 사운드라고 생각했어요. 뭐, 리치는 잉위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는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기도 하네요.
YG : 크리스는 랜디 로즈로부터 클래시컬한 영감을 받았지요?
CI : 예...,처음으로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오지 오스본의 [Revelation (Mother Earth)]였어요. 그 곡에서 연주하던 랜디의 하모닉 마이너 프레이즈가 최초예요. 나는 모차르트나 바하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은 아녜요. 클래식 음악 그 자체보다, 헤비 메탈에서 그런 요소들을 사용하는 어프로치가 나에게는 너무나 멋지게 보였어요. 그래서 "울리히 존 로스를 들어봐"라는 조언을 듣곤 했지요. 그런데...이야기의 주인공은 리치 아니었나요?(웃음) 물론 그의 클래시컬한 요소로부터도 영향을 받았어요.
YG : 잉위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역시 그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나요?
PG : 처음으로 그의 음악을 들은 것은, 실은 전화를 통해서였어요.(웃음) 아직 팬실베니아에 살고 있을 당시에요. 마이크 바니에게 테이프를 보낸 후, 그에게서 정화가 왔어요. "너의 테이프는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걸 좀 들어줄래?" 하면서 잉위의 곡을 들려주었지요. 아무도 그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때. 아직 스틸러의 앨범조차 나오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 당시 나의 피킹 테크닉은 완전히 초보단계였어요. 반 헤일런의 흉내를 내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런데 그의 피킹을 들어보니 [와아~].
알 디 메올라조차 듣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피킹을 하는 사람은 처음 들어본 것이었죠. 그건 "이렇게까지 가능하구나. 나에게도 그 가능성이 있다" 라는 깨달음을 주었어요. 실제로 해낸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도 연습만 하면 가능하겠다 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해 주었지요. 물론 테크닉 면에 대해서만 감동을 한 것은 아니예요. 나는 뮤지션으로서 잉위를 좋아해요. 그의 연주에는 엄청난 열정이 있기 때문이죠.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어요. 그는 대단한 열정가예요.
CI : 또 한가지를 해치워 버린 사람이 나타났다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으로 잉위의 연주를 들은 것은 그가 알카트라즈에 있을 때인가... 재미있게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잉위를 흉내내고 있다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의 연주를 들어본 것은 꽤 나중의 일이지요. 받은 영향이라면 속주 뿐이예요. 실은 지미 벨(Jimmy Bell)의 영향이 컸어요.
PG : 아~ 코네티컷에 사는...
CI : 그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왼손잡이인데...
PG : 밴드 이름이 뭐더라...?
CI : 베라덕하고, 조인 포시즈.
PG : 아, 그래. 조인 포시즈예요! 그사람 연주는 마치 벨이 울리는 듯한 울림이 있지요.(웃음)
CI : 어렸을 때, 클럽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지미의 공연을 곧잘 보았는데, 굉장했어요. 지옥으로보터 막 뛰쳐 올라왔다는 느낌! 그런 연주는 본 적이 없었어요. 그는 뭔가 한가닥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그냥 그렇게 사라져갔지요. 그 이후에 잉위가 나오고..., 물론 잉위쪽이 더욱 흥미있는 연주를 보여주었지만요.
YG : 그 지미 벨이라는 사람은 앨범은 내지 않았나요?
CI : 글쎄요? 어쨌든, 젊었을 때의 그는 좀 정리가 안된 상태였어요. 어렸을 때에는 록 스타가 되고 싶어서 퀸에 빠져있었고, 오지 풍의 리프도 연주하고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 그걸 발전시키려고는 하지 않았어요. 오지의 밴드 오디션에도 갔었는데, 그 자리는 Zakk(Wylde)가 차지했고... 재능은 있었어요. 연주도 대단했었구요. 소문에 의하면 기타 강사를 하다가 고향에서 악기점을 하고 있는 듯 해요. 토니(매컬파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에게 물어보세요. 잘 알고 있을거예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되돌아갈까요? 처음으로 알카트라즈의 잉위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반 헤일런을 들었을 당시가 떠올랐어요. "또 누군가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라는 느낌이죠. 즉, 이 장르에서는 이 이상의 기타 연주는 나올 수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당시에 그가 튀어나온거죠. 그래서 나는 폴과는 반대로 "엄청난 연주자야. 그런데 나는 지미 벨을 겨우 흉내 내고 있는데...나에게는 이제 기회가 없는거야. 취미생활로나 해야겠군..."라며 푹~ 꺼졌어요. (웃음) 그렇지만 무척 감동했었고, 기타가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이었어요.
YG : 크리스는 [Stand In Line]에서 그래함 보넷과 함께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는 잉위의 연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든가요?
CI : 그래함은 자기와 함께 연주했던 기타리스트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다 했지요.(웃음) 언제나 잉위를 바보취급했지요. 잉위 뿐만이 아니었어요. 리치나 마이클 생커(Michael Schenker)에 대해서도 언제나 좋지 못한 이야기만 했지요. 불쌍한 사람이예요. 나는 그가 좋았어요.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수로서도 최고였고요.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내가 함께 일할 때의 그는 알콜이 좀 심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떤 기타리스트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든...
PG : 뭐 그리 귀담아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뜻이지요?(웃음)
CI : 그렇죠. 그렇게 술에 절어가지고는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하지요. 혹시 그 이후에 나에 대해서도 뭐라고 한거 아닐까요?(웃음)
YG : 그런데, 아까부터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에디 반 헤일런의 등장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었나요?
PG : 물론이지요! 그의 데뷔앨범은 특별히 큰 의미를 갖지요. 나에게 있어서 베스트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 연주! 그 사운드! 나는 앨범을 제작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반 헤일런의 1집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할 정도예요.(웃음)
CI : 저도 동감이예요.
PG : 그 앨범이 발매됨에 따라서 수많은 개념들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의 톤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지요. 물론 태핑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테크닉들의 등장도 놀라운 것이지만, 핵심은 밴드 사운드예요. 당시의 주요 락 작품들이라면, 에어로스미스의 앨범, 테드 뉴전트, 칩 트릭, 하트의 작품...어느 것이든, 프로듀스에서 손을 많이 댄 작품들 뿐이었지요. 드럼의 하이햇도 타이트하고, 오버더빙도 상당히 많이 되어있었지요. 그런데 반 헤일런은...물론 내가 그 스튜디오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완성된 앨범을 들어보면 한마디로 라이브사운드와 다를게 없었어요. 알랙스의 하이햇은 느슨하고, 소리도 크고, 심벌은 쾅쾅 울리고, 대부분의 기타 솔로에는 배킹기타가 들어있지 않았죠. 그러니까, 진짜 라이브 사운드로 녹음되었던 거예요. 그 당시의 어떤 작품들보다도 충격적이었지요. 가장 충격적인 "스튜디오 라이브"작품이었던 거예요. 어째 되었든, 그 앨범이 나왔을 당시 깜짝 놀랐어요.
CI : 당시 나에게 어떤 여자가 반 헤일런에 대해서 알려주었는데, 처음에는 "음, 뭐 좋네..."정도였어요. 즉시 뭔가 확 와 닿지는 않았죠.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을 때, "한번 들어봤던 거지..."하면서 레코드를 사보았는데, [I'm the one]이라든지, [Eruption]...다시 들어보니 모든 것이 놀라웠어요. 그 이후로 그의 신봉자가 되었지요. 지금도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기타를 칠 때면, 애디가 되곤 하죠.(웃음) 혹시 그게 그의 스타일과는 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흉내 내는 것은 막을 수 없지요.(웃음)
특히 1, 2집으로부터는 일생분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이예요. 그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된거죠. 나도 폴과 마찬가지예요. 앨범을 녹음할 때마다 [이번에는 반 헤일런과 같은 리버브가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곤 해요. 그래서 최대한 [아니야, 무리한 부탁을 해서 앤지니어를 괴롭히지 말자]하고 다짐을 하지요.(웃음) 그로부터 영향받은 것은 테크닉 뿐만이 아니예요. 톤이나 리버브까지 흡수했어요.


- "이제부터 재미있어지리라 생각해요."
YG : 20세기에 이름을 남길 기타리스트...,폴 길버트와 크리스 임펠리테리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CI : 나는 좀 질투를 했어요.(웃음) 레이서-X(Racer-X)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Tony MacAlpine이 앨범을 냈지요. [Edge of Insanity](1986)라는 타이틀이었다고 기억하는데...
PG : 자켓에 발 그림이 있는 앨범이지요.
CI : 그랬나? 어쨌든, 그건 참 훌륭한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위험할 정도로 잉위의 클래시컬한 감각과 닮았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그래서 레이서-X의 앨범을 들었을 때, 우선 그 음악적 어프로치에 공감했어요. AC/DC의 [Highway to Hell]을 방불케 하는 리듬과 톤이 있고, 절도가 있어서 멋있었지요. 거기에 폴의 잉위 이상의 플레이. 놀랬어요. 무척 익사이팅했지요. 그 시대에 상당한 연주자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테크닉 적으로 완벽하고, 깨끗한 음을 내고, 게다가 록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폴과 레이서-X가 튀어 보였던 거죠. 확실한 멜로디 구성이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에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어요. 그렇게 경이로운 테크닉을 갖고 있으면서, 가슴에 남는 곡을 만들 수 있는 밴드란, 정말 멋지죠.
PG :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앨범은 그래함 보넷과 공연한 [Stand in Line]이기 때문에, 좀 괴롭네요.(웃음) 그에 관한 이야기가 좀 나왔었잖아요?(웃음)
이야기하지면, 그 기타 플레이는 엄청나요. 드럼을 쳤던 것이 Mr. Big의 펫 토페이었지요? Mr. Big의 투어 중에, 팬들이 그에게 와서는 "크리스 임펠리테리와 함께 했던 앨범이 최고예요"라고 곧잘 이야기했어요. 인상이 강했지요.
CI : "제발, 하나님... 모든 사람들이 그 앨범의 존재를 잊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너는 그 앨범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고 대답을 듣는 것 같네요.(웃음)
PG : (웃음) 그렇지만 , 그 앨범의 연주는 무척 깨끗하고 열정이 있어요. 그것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2년정도 GIT에서 강사를 했었기 때문에, 엉터리 속주 연주자들을 많이 봐 왔어요. 진득하게 속주를 연습할 수 있는 인내력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요. 그들은 "오른손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 왼손은 적당히 해도 괜찮아"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엉터리 속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데, 크리스는 확실하게 시간을 들여서 기타를 연습해 왔고, 정확히 치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그 앨범으로부터 느껴졌어요.
YG : 두 사람의 그러한 플레이를 듣고 있으면, 연습을 쌓아올리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재능이란 것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실제로는 어떤가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왔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갖고 태어난 재능에 대해서 감사하고있나요?
PG : 나같은 경우는, 옛날 카세트에 들어있는 술 취한 연주를 들어보면, 프로 연주자가 되기까지 얼만큼의 긴 시간의 연습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어요.(웃음) 기타를 시작한 처음 2년은 매일 최소한 1시간은 연습하려고 결심을 했었어요. 기타리스트가 되고싶어서 어쩔 줄 몰랐기 때문에 엄청나게 기합이 들어가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처음에는 술취한 것같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아 고심의 연속이었어요. 비 효과적인 테크닉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발전이 늦었던 거죠. 그냥 잘 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죠. 만약 기타 연습에 있어서 유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재능이 있었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강한 의욕"이예요. 기술적인 것이 아니예요.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어" 라는 의욕 말이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에디(반 헤일런)의 기타 소리가 나에게는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할 것!"이라고 들려요. 그렇기 때문에 에디가 실재로 8시간씩 연습했다는 인터뷰를 읽었을 때도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그의 기타소리는 그렇게 들리거든요. 기타가 너무나 좋아서 잠시라도 떼어놓지 못하는 그런 소리잖아요? 그때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 8시간은 무리였지만, 나도 매일 많은 시간 연습을 했어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치면 칠수록 발전하고, 연습은 배신하지 않아요. 간단한 방정식이죠. 좋아하는 레코드를 듣는 것도 좋고, 라이브를 보러 가서 자극을 받는 것도 좋지요. 어떤 방법이든 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게 중요하죠. 어떤 일이든 마음에서부터 즐기지 못하면, 질려버리잖아요?
CI : 내 경우도 같아요. 기타를 처음 만난 것이 9살 때였는데, 당시 나에겐 여러 가지 불행한 일이 많았어요. 부모님이 자살로 죽었고, 그래서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죠.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때 할머니는 "이녀석이 나중에 뭐가 될까"하고 불안해 하시다가 악기를 배우게 하자고 생각하셨어요. 처음에는 폴과 마찬가지로 모든게 힘이 들었죠. 그런데 어느 시기, 이유도 모르게 이 악기에 모든 것을 걸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최고의 연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 순간 내가 진짜로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곤 의욕과 연습. 성장하는게 즐거워지고, 악기에 대해 헌신적이 되는 거죠.
YG : 예를 들어 63년생인 잉위를 제일 윗 연배로 하고, 그 다음으로 64년생의 크리스, 66년생의 폴이 있어요. 그 수년간은 다른 시기에 비해 엄청난 테크니션들이 많이 있지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돌연변이같은 시기는 역사에 없어요.(웃음) 그 이유는 뭘까요?
PG : 테크닉의 시대다!!!(웃음)
YG : 그러니까, 좋은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의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일으킨 시대적 배경도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데요.
PG : 새로운 연주자가 등장할 때, 그 전의 세대가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죠. 크리스와 내가 어째서 이런 연주를 하고 있는가..., 단순히 그 전 시대 음악의 팬이었기 때문이죠. 반 헤일런을 듣고 "멋지군!!!"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즉, 영웅의 덕분에 나는 뮤지션이 된거예요. 어떤 시대라도, 그 다음 시대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죠. 잉위 이후의 테크닉 시대는, 그 이전의 기타리스트에 의해 기초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기타리스트들이 그 후 수년간의 젊은이들을 자극했다는 거죠. 단지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떤지, 그건 잘 모르겠네요. 90년대에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연주자 지상의 뮤지션이 별로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앞의 일은 예상하기가 힘이 드네요. 그것에 비해,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기타 음악을 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은 테크닉적인 좋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크리스와 나에게 그 영향력이 미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CI : 생각해본 일은 없지만, 확실히 그렇네요. 그 시대에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자기를 형성할 시기잖아요?(웃음) 그런 시기에는 무엇이든 흡수하고, 그것은 장래의 개성의 기둥이 되죠.
PG : 이후 수년간 등장하는 것은, DJ의 거장들이 아닐까 모르겠네...스누프 도기 독에게 영향을 받은,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한 엄청난 테크닉의 DJ들이 등장하는 겁니다!(웃음)
CI : 턴테이블로 아르페지오를???(웃음)
PG : 그것도 너바나처럼 질질 끌면서...(웃음)
YG : 정확히 기타 음악의 절정기였던 80년대에 두 사람은 그 중심지인 LA에 있었지요?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긴장감이 있었지요?
PG : 최고로 익사이팅한 지역이었지요. 실은 어제 헐리웃 근처를 산책했는데, 뒷길에 들어가니까, 그 시대의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실감했어요. 이곳에 이사왔을 당시, 나는 아직 무명이었고, 아무런 계약도 없었지요. 거기서 레이서-X를 거쳐, Mr. Big에 가입해서...그 과정이 무척 익사이팅했어요. 많은 추억들이 있어요. 손님이 아무도 없겠지...하면서 무대에 올라보니 클럽이 만원이었던 경험도 있어요. 기타 음악이 풍성하던 그 시기에 LA를 경험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어요.
CI :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80년대는 나에게 힘든 시기였어요. 이곳에 와서 롭(Rob Rock)과 데모 테입을 녹음하고, [Impellitteri](87)를 우리들끼리 제작했는데, 내가 기타를 얼만큼이나 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확인받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런데, 나는 파티만 좇아다니는 놈이 되어 버렸지요. 마약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을 망가트렸어요. 정확히 그 때, 그래함과 함께 밴드를 시작했지만,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모르는 채 매일 클럽을 들락거렸어요. 곡을 쓰는 뮤지션에서 아무 의미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거죠. 정말이예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어요.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아까 폴은 좋게 이야기 해주었지만,(웃음) [Stand in Line]같은 작품밖에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많이 공부한 시기였다고 할까..., 자문자답을 했어요. "넌 반 헤일런이나 잉위맘스틴처럼 될래, 아니면 머틀리 크루나 포이즌의 뒤를 이을래?"라고 말이죠. 헤어스프레이를 사러 갈 것인가, 기타를 갈고 닦을 것인가 하는 고민. 그렇게 고민하던 떄가 나의 80년대예요.
PG : 화려한 세계였던만큼, 그런 갈등이 생기기 쉬운 시대, 환경이었어요. 뭐든지 무지하게 심각했죠.
YG : 그에 비해 90년대는?
PG : 그런지계, 얼터너티브계라고 하면 닭살 돋듯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밴드들이 등장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음악에 대해 정열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많은 메탈밴드들로부터는 원래와 같은 진지함이 느껴지지 않게 되어 버렸지요. 지금 크리스가 이야기 해준 심각한 갈등도, 결국 그러한 분위기로부터 생겨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80년대 이후, 많은 메탈밴드들은 건전하지 않은 이유로 음악을 연주했다고 봐요. 팬들이 그것을 눈치 채 버렸죠. 게다가 그들은 너바나와 펄 잼을 듣고 "이들은 마음으로부터 곡을 믿고 있어"라고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거잖아요? 나는 80년대 후반부터, 곧잘 중고 레코드점에서 아나로그판을 사 모았는데,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 음악을 듣고 싶어서 말이죠. 그 덕에 그런지 방향으로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헤비메탈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갔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음악을 요구하는 이유를 알고 있어요. 한가지 음악은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거죠.
CI : 확실히, 90년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큰 변화였지요. 하드록 전체가 갑자기 멈추어 버렸어요. 날이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는 느낌이었어요. 단지, 그 덕에 내가 연주해야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은 얄궂네요.(쓴웃음) 90년대의 음악에는 그다지 영향받지 않았지만, 판테라나 화이트 좀비같은 음악에 흥미를 느끼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이번에 나오는 앨범[Crunch]는 그러한 요소를 혼합시킨 작품이예요.
YG : 레트나 도캔의 재결합에 이어 잉위는 라이징포스 작품, 폴은 레이서-X작품, 그리고 크리스도 90년대의 헤비메탈 기법을 도입한 작품을 낸다...기타계의 부활이라기보다는 90년대를 거쳐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PG :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좋은 팝 음악과 좋은 헤비메탈 음악이예요. 그런 나의 뿌리를 연주하여, 최고의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했을 뿐이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이 시대에 유행이 되느냐 마느냐,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떠 넘깁시다.(웃음) 혹시 그 유행 중에 내가 껴 있으면 최고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Technical Difficulties]에 대해서는 자신을 갖고 있어요.
CI : 같은 의견이예요. 이 유행이 부활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준비가 되어있어요. 무척 흥분되어있지요. 거기에 음악 팬으로서도, 여러 아티스트들의 기타 중심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오랬동안 그런 음악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구요. 이재부터 재미있을거라 생각해요. 기타 음악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거죠. 계속해서 진화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무척 흥분되어있어요.
PG : 뭐, 구체적인 스타일은 모르겠지만, 흥미있는 신인 연주자가 등장하는 것도 기대되네요. 나는 연주자임과 동시에 음악 팬이예요. 새로운 사운드를 발견하면 정말로 행복해요. 실은 요즘 와일드하트를 듣고 있어요. 일본에서 인기가 많죠? 일본의 팬이 테이프를 주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러한 밴드들이 아직 많이 있을 것이고, 이후로도 틀림없이 등장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음악 팬으로서 새로운 발견을 위해 찾아다닐 거예요. 그 1탄으로 크리스의 새 앨범 [Crunch]를 들어야지!(웃음)
CI : 나도 레이서-X의 곡들을 다시 모두 들어야지!
21세기예요. 랩의 비트에 맞추어 속주를 하는 연주자가 나와도 놀라지 않도록 준비를 해야지요.(웃음) 그리고, 내가 반 헤일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처럼, 사람들은 KORN이나 림프 비즈켓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어요. 기타 연주자들은 그 요소들을 받아들여 어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겠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라고 이야기하지만, [Slippery When Wet]이 나왔을 때, "본 조비는 성공 못해"라고 말을 했던, 자기 멋대로인 사람의 예상입니다.(웃음)
PG : 나는 포이즌은 히트치지 못한다고 예언했어요. 완전히 빗나갔지요.(웃음)
Posted by Shred sh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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